진선이와 민주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하이퍼텍스트 소설)

2018. 3. 5. 03:29

 






매점은 항상 만원이다.
제일 앞에서 빵을 유심히 바라보는 아이, 그 뒤에는 이미 자신은 살 것을 골랐다는 듯 천원을 꼭 쥐고는 아줌마의 눈에 띄길 바라며 손을 드는 아이. 그리고 그 옆에는 음료는 피크닉으로 해야 피자빵과 어울릴까 아니면 돈을 조금 더 보테서 초코우유를 살까 고민하는 아이. 그런 수 많은 아이들 속에서 줄이 어딘지 잘 모르지만 일단 낑겨서 앞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아이들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게, 언제나 찾아오는 2교시의 공복감은 아이들로 하여금 식탐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래서일까, 매점에서 무언가를 쟁취하고 나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물론 10분이라는 한정된 쉬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뚫고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고 나오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보통의 공복감이 5였다면, 그날은, 심지어 그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공복감이 9까지 치솟은 날이었다.
“진선아, 뚫을 수 있겠어?”
나의 이쁜 도야지. 진선이. 우리는 서로를 보며 매점 앞에서 멍청하게 웃었다.

 

 

교실 안에는 민달팽이들이 드디어 집을 찾은 듯, 모두가 담요 속에 몸을 반쯤 감추고 엎드려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진선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아마도 얘네들은 이렇게 내년 봄까지 굳어버리겠지. 아아, 가을은 그야말로 변태적이로구나!”
나는 그런 진선이의 허리를, 아니 배를 잡으며 말했다.
“크흠, 낭자. 참으로 감촉이 좋소”
“어맛, 도련님. 참으로 변태적이시구만요.”
“야, 완전 아조씨들같거든 너희?”
민주가 엎드려서 고개만 돌린체로 태클을 걸어왔다.
“그럼 아조씨랑 비밀친구할래?”
“아조씨가 쪼꼬우유 사줄께”
진선이와 나의 말에 민주는 헤벌쭉 웃으며, 우리가 사온 초코우유를 받았다.
“우왕, 비밀친구 조으다.”

 


“그래서 뭐, 그 진짜 아조씨랑은 뭐, 진전 있어?”
민주의 말에 순간 나는 주변을 훑었다.
“쉿”
“쉿은 무슨, 그리고 얘가 달려들어서 뭘하게. 야, 그거 범죄 아니냐.”
“범죄는 무슨 얘가 뭐 돈 받고 만나냐”
“쉿”
나는 다시 한 번 민주와 진선이에게 주의를 줬지만 이년들은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런데 그러면 뭐해. 그 아조씨도 마음이 있어야 하는거 아냐? 또 혼자 끙끙 앓다가 쑈하고 그르냐?”
“진짜 그르냐? 그리고 그만큼 쑈했으면 그 아조씨도 모르는건 아닐텐데, 모르면 진짜, 아니, 알아도 그게 뭐냐. 우리 귀요미 불쌍해서 오.똑.해...”
나는 민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 한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
“주륵.”

 


계속 되는 수업시간동안, 자꾸만 민주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진짜 모를까. 진짜 아저씨는 내 마음을 모를까. 아니면 긴가민가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이쁜...은 아니지만 그냥 동생같은 알바생이라고 생각을 할까. 아니, 결혼을 일찍 했으면 이만한 딸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자꾸만 아저씨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근데 알면 뭐해, 알면 더 큰일 아냐?’
순간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마음을 알리고는 싶은데, 알리고 싶지도 않다. 이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지? 하지만 정말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저씨는 나를 어떻게 볼까. 아저씨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바보 같다. 나는 정말로 바보같다.
가끔씩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계속 아저씨를 카페에서 보고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고, 또 다음날이 되고. 나는 언제나 고등학생으로, 아저씨는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그런데 또 고등학생으로만 남아있기는, 칠판을 보자니 싫다. 하지만, 아저씨와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
계속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수업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만의 상상을 한다. 상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저 아저씨와의 평화로운 한때만을 생각나게 한다.


“뭘 그리 실실 쪼개고 앉아있냐?”
어느새 민주가 앞에 앉아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응?”
“수업 다 끝났어. 이년아.”
“어? 종소리 못 들었는데?”
“5교시부터 고장났었거든? 그나저나 우리 오늘 너네카페 가도 돼?”
“응?”
어느새 다가온 진선이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오늘 너네 까아-페에 가서 시간 때리다가 학원갈려구”
“구랭”
나는 멍청하게 웃었다.

 


가을의 카페는 뭐랄까, 더 커피 같다. 노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갈색깔의 낙엽들이 떨어지는 세상에서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거기다가 슬며시 퍼지는 빵내음과 커피 향은 순식간에 들이치는 차가운 가을바람으로부터로 도망칠 수 있는 조그마한 피난처 같다. 그리고 그 피난처에서 느끼는 따듯함과 가을색깔은 정말로 쓸쓸한 가을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난로만 같았다.
“근데 아조씨는 안 와?”
민주의 말에 잠시 휘청였지만, 나는 꿋꿋이 라떼 마키아토를 민주 앞에 내려놓았다.
“시럽 뿌려줄까?”
“시럽”
“아조씨 왔네, 여기.”
진선이의 말에 나는 또다시 바보같이 웃었다.
“구르게”

 


그날 민주의 말처럼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만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1. 카톡을 보낸다.
2.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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