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운명, 그리고 너에 대한 작은 반항

나열, 감정의 나열

2024. 3. 13. 21:46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생이 개떡같았으니까.

대부분 나의 인생에 놓여진 길들은 좋지 않았고,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개구렸다. 그렇기에 굳이, 굳이 내가 그것들을 선택해야만 하나 하는 고민을 한적도 많았고, 그런 어쩔 없는 현실에 자조적인 웃음을 내지을때도 많았다.

어쨌거나, 항상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까. 그래, 그거 뿐이면 좋았을텐데, 살다보면 갑자기 뺑소니에라도 치인듯, 잘 걷고 있는 나에게 없는 누군가의 선택의 결과가 그저 빵하고 들어와 인생을 송두리체 흔들며 그에 따른 청구서가 날라오기도 했었다. 그래, 숨을 쉬고 있는 내가 잘못이지. 어쨌거나 나는 결과들의 대부분을 그저 오롯이 혼자서 껴안고 가야 때가 많았다. 물론 가끔씩 따듯한 손길이 나를 일으켜 주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던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지 않는다면, 무너져서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현재는 미래에 닿지 못하니까, 항상 과거가 되어버릴 곳에 고정되어 있을테니까, 나는 현재와 미래를 잇기 위해 다시 일어나 걸어야 했다. 아니, 살기위해 걸어야 했다.

그래서 힘듦을 알고 있기에, 누군가가 설계한 같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아니, 나는 싫어했다.

 

'내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나의 걸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아니, 이런게 운명이라면, 나는 도대체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기에 나는 가끔씩 운명과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당연히 A선택해야 할때 나는 B 선택했고, 혹은 선택지에 없는 것을 고르며 삶과 부딪혔다. 강렬하게 부딪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고, 가끔은 다리가 부러져 미친 선택에 대해 피를 토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다들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멍청이, 또라이, 진짜 미련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운명에서 벗어난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더러운 선택지들 속에서 나를 지킨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떠한 운명도 믿지 않았다. 만약,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전지전능한 신이 모든 것을 설계를 했다면, 나는 신을 죽이러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비참함과 슬픔들, 그것이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설계한 내용이라면. 그들에게 처음부터 구원을 주지 않았나. 나는 살면서 나보다도 힘든 사람들을 보았고, 사람들의 슬픔을 보았다. 그런 그들에게 운명이라는 이름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도 심한 폭력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추운 겨울에, 입김이 나오는 허름한 집안에서 어느 누가 미래를 위해 공부를 있었을까, 어느 누가 붓을 쥘수 있을까, 어느 누가 기타줄을 튕길수 있을까? 그저, 작디작은 어린 아이가 있는것은 그저 꽁꽁 외투와 이불을 뒤덮고 조용히 웅크리는 것밖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을 것이다.

추위를 이겨내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따듯한 환경을 쥐어주고, 가난의 고통과 삶의 힘듦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것과는 얼마나 결심과 용기인가. 하지만 그런 결심과 용기를 가지고 똑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이미 가진자들과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다를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성공한 초인만을 원하는 것인가? 그저 보통의, 좌절하고 슬퍼하며, 추울땐 따듯해지고 싶고, 더울땐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은, 그런 사람은 없는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일까?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는, 그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사회에서, 아니 세상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모든 신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저 나를 갈고 닦아 사람이 되고, 사람으로써 다리로 걷는것 그것 하나면 족했다.

 

하지만 너는 아닌 거 같았다. 사랑을 이야기할때, 점과 사주와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했을때.

만약 운명의 결과로써, 우리가 헤어질 운명이 나왔다면 너는 나와 헤어졌을까.

 

나는 너와 거세게 운명에 저항하고 싶었다.

그런 운명이 하늘의 뜻이라면 나는 역천을 입에 올리고 싶었다.

 

나는 항상 정해진 운명에 벗어나 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야기했다.

"우리가 헤어질 운명이 나온다면, 너는 나랑 헤어질꺼야?"

"에이, 점은 듣기 좋은 소리들 들을려고 가는건데, 그런 점집이 어딨어."

"그래도 너가 신통하다고 하는 점집에서 그때쯤에 좋은 사람 만났다고 했는데 나와 만난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너는 미신을 좋아했다. 나도 그 미신들에 대해서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삶이 고될 때, 아무도 옆에 있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의지할만한 게 필요하니까. 혼자서 일어나기에 너무나도 힘들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그게 삶을 잠식해 나가는 건 너무나도 슬펐다.

"나는 우리가 헤어질 운명이라도 나와도 거세게 저항했으면 좋겠어. 만약에 우리가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가 몇살쯤에 죽을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냥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야할까? 운명에 벗어나기 위해서 미친듯이 저항하지 않을까? 그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만큼 운명에 저항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조금 비약을 심하게 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너가 쉽게 알아챌 거라고 생각하고.

", 맞아. 그런 점이 나올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맞아, 나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이를 살릴려고 노력할꺼 같아."

그래도 다행인건, 너는 그런 나의 마음을 쉽게 알아차리고 웃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럼 우리, 우리 스스로 걸어가자. 운명이나 , 있는지도 모를 신에게 기대서 걷지말고."

", 맞아 스스로 걸어야지. 너가 항상 말하듯, 우리에겐 아직 튼튼한 다리가 있잖아."

"그렇다고 , , 이런거를 뺐다고 너무 현실적으로만 생각은 하지말고,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걷자.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들은 오지 않을테니까. "

나의 말에 너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녹아내리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기엔, 지금 너무나도 행복한걸"

너의 말에 나의 가슴도 행복해졌다. 나도 모르게 너의 손을 쥐었다.

"앞으로도 행복하자, 우리."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걸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도 너가 자그마한 재미로, 혹은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에 답이 나오지 않았을 때, 그래서 신적인 무언가에라도 기대어 작은 희망이라도 느끼고 싶었을때, 그것들을 찾아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너를 이해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도 싶었지만, 가끔씩 자연재해처럼 터지는 일들은 그저 우리의 손을 벗어나 우리에게 잘 대처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우리가 있는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해했다. 나조차도 그런 일들 앞에서는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너의 삶의 주인이 너가 아니게 되는,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한 알수 없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러다가 너가 어느 날 너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할까봐. 너가 사소한 것들에 계속 신경을 쓰고 사는, 그런 삶을 살게 될까봐.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너의 다름에 작은 반항을 했다.

 

그리고 너는, 웃으며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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