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이 아팠다.

나열, 감정의 나열

2018. 3. 5. 03:28

  하늘색이 아팠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하늘색 가방, 그녀가 귀에 걸고 다니던 하늘색 큐빅, 그녀의 하늘색 손가락.
  그녀는 하늘색을 사랑했다. 비록 그녀가 하늘색을 너무나 사랑해, 하늘색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흐릿한 하늘색을 띈 물건을 보면 이내 이야기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그것에 시선을 뺏겼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녀가 하늘색에 대한 어떤 마법이 걸려있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뭐랄까... 그녀의 시선을 계속 훔치는 마법이랄까? 그래서 나는 하늘색을 질투하기도 했었다. 하늘색 아이스크림, 하늘색 지갑, 하늘색 폴더... 그래서 나는 하늘색에 빠져버린 그녀에게 바치는 선물조차 그 색깔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한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이 조금씩 그녀를 빼앗아가는 것만 같았고 나는 그런 하늘색이 조금 싫어지기도 했었다.
  괜스래 그녀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왜 하늘색을 좋아하는 거야? 하지만 그녀는 그저 아무말 없이 빙그래 웃기만 할뿐이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이 딱히 좋아하는데에 이유가 필요할까를 생각하기도 했었고 그런 하늘색을 어찌보면 집착으로까지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묘한 신뢰감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하늘색은 그녀의 색이었다. 그녀를 표현해주는 색. 그녀와 헤어지고도 그녀를 강하게 떠올릴수 있는 색 하늘색. 그녀는 아마도 하늘색에 자신을 부여하고 저주하듯 혹은 축복하듯 그 색깔을 입은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떠나고 나니 하늘색이 매우 아팠다. 하늘색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고, 그 하늘색을 볼때마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색을 떠올리게 하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늘을 볼 여유가 없어지면, 그녀의 하늘색이 가끔은 어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늘색에서 멀어지고자 세상을 빠르게 돌렸고, 나는 하늘을 볼 여유조차 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하늘색 아이스크림을 나도 모르게 고르고, 옆에 앉은 너와 손을 잡으며 문득 생각이 났다. 너를 색깔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일까. 잠시 눈을 감자마자 떠오른 한없이 따듯한 붉은 색.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이제는 무언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없이 맞춰가려고 했던 사랑과 서서히 나도 모르는 새에 물들어가는 사랑. 나에게 지금의 하늘색은 여느 해질녘의 그 따듯한 붉은 색이 아닐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물들어간, 붉은색에, 그녀의 색상에. 나는 따스함을 느꼈다. 마치 해질녘에 바라보는 그 따듯한 세상같달까. 하지만 이 따스함에, 이 색깔에 가끔씩 겁이 나기도 했다.
  지금하고 있는 이 사랑이 하늘과 같다면, 나는 어둠에 떨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해야하는 것일까.

  왠지 모르게,

  또 다시 하늘색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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